신라를 세우고, 일구고, 가꾼 역사상의 인물들을 되돌아보는 ‘신라 역사 인물 특별전’을 마련하고 있는 국립경주박물관(관장 이영훈)이 이태 전 ‘원효대사전’을 개최한 데 이어 올해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중국에까지 문명(文名)을 떨친 ‘고운 최치원 특별전’을 개최한다. 특별전은 9월 18일 개막해 11월 18일까지 이어진다. 특별전 기간 중인 10월 27일 오후 3시엔 김복순 동국대 교수를 초청, ‘최치원의 저술과 사상’을 주제로 강연회도 마련한다.
최치원은 신라를 대표하는 문인이자 학자이며 사상가이고 관료였다. 그는 12세의 어린 나이에 당나라로 유학하여 18세에 과거에 급제했다. 당나라에서 관료 생활을 시작하게 된 최치원은 황소의 난을 평정하는 ‘격황소서(檄黃巢書)’를 지으면서 그의 문명을 널리 떨쳤다.
885년 신라로 돌아온 최치원은 왕실에서 외교문서를 작성하는 등 많은 일을 하였다. 894년에는 신라의 개혁을 위해 ‘시무10여조(時務十餘條)’를 지어 진성여왕에게 올렸으며, 진성여왕은 이를 받아 들여 최치원을 6두품 가운데 가장 높은 자리인 아찬에 제수하였다. 그러나 ‘시무10여조’는 진골 세력 등의 반발로 인해 실현되지 못하였고, 이는 최치원이 세속을 떠나 은둔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고 말았다.
최치원은 정치적으로 뜻을 이루지 못했지만, 그의 학문은 다양한 방면에서 뛰어나 후세에 모범이 되었다. 고려와 조선시대의 문인들은 그를 동방의 문종(文宗)으로 추앙하고, 기리는 글들을 많이 남겼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러한 최치원의 여러 면모를 살펴볼 수 있는 자료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이 자료들을 바탕으로 최치원이라는 인물을 조명해 보고자 했다. 전시는 1부 청운의 꿈을 품다, 2부 세상에 문명을 떨치다, 3부 서책으로 베개를 삼고 풍월을 읊다, 4부 최치원을 추억하다 등의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최치원의 대표적 저술인 《계원필경》을 비롯하여 ‘사산비명’ 탁본 등 100여점이 선보인다. 이 가운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최치원 진영(崔致遠眞影)’은 보존처리를 마친 뒤 처음으로 공개된다. 이 밖에도 김종직(1431~1492), 남효온(1454~1492), 이황(1501~1570), 김창협(1651~1708) 등의 조선시대 문인들의 시문집도 눈여겨 볼만하다.
<사진> 특별전에서 선보일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최치원 진영(崔致遠眞影)’. 조선시대, 117.8×76.5cm, 견본채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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