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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는 혼자가 아닌 함께 만드는 것” [법문/수행] 글자크게글자작게

 
암도 스님(조계종 원로의원)

경전은 부처님의 말씀이고, 선 수행의 궁극 요체는 부처님의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부처님은 그 궁극 요체인 마음을 전하기 위해 세 번이나 무언의 설법을 하셨습니다. 그 삼처전심의 의미를 되새겨 보면 오늘날 우리 인류가 갈망하는 목표와 긴밀하게 부합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어느 때 부처님은 대중들을 향해 연꽃 한 송이를 들어 보였습니다. 아무 말 없이 꽃을 들어 보였는데 아무도 그 뜻을 알지 못했습니다. 다만 가섭 존자가 그 뜻을 알고 빙그레 웃었습니다.

부처님은 왜 말 없이 꽃 한 송이를 들어 보였을까요? 그건 부처님 자유입니다. 꽃을 들건 돌을 들건 그건 부처님 자유입니다. 그리고 가섭은 왜 빙그레 웃었을까요? 그것도 가섭의 자유입니다. 얼굴을 찡그리거나 엉엉 울거나 가섭의 자유입니다. 꽃을 든 것은 부처님의 자유요, 미소를 지은 것은 가섭의 자유이니 그 두 분의 자유 앞에서 무슨 긴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말이 없는 곳에서 말이 없는 것을 전하니 그 뜻을 어떻게 말로 다 할 수 있겠습니까? 만물의 생명은 절대 자유이니 부처님은 그 소식을 전하고자 꽃 한 송이를 들어 보이신 것입니다.

진정한 자유의 삶을 위해서 우리는 우선 자주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스스로 주인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자신은 이 세상에서 주인이라는 확신을 갖고 살아야 행복해 집니다. 스스로 조연이나 엑스트라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늘 옹졸하고 비굴하고 초라하게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자기 인생은 자신만 책임지는 것입니다. 스스로 주인의식을 갖고 무슨 일을 해도 지극한 마음으로 하고 그 일에 대해서는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나무 아래에서 열반에 드셨습니다. 입적에 드신 부처님 앞에서는 많은 제자들이 슬픔을 감추지 못하고 울었습니다. 그 자리에도 지각생이 있었습니다. 또 가섭 존자였습니다. 그는 다른 지역에서 전법을 하다가 부처님 열반소식을 듣고 달려 왔는데 이미 부처님은 관 속에 모신 뒤였습니다. 가섭이 절을 하고 관을 세 바퀴 돌았습니다. 그때 관에서 부처님의 두 발이 쑥 나왔습니다.

이것은 무슨 소식입니까? 평화의 소식입니다. 죽음의 공포로부터 초월하고 생과 사의 윤회로부터 초월하여 자신과 일체중생이 다 평화의 들판에 노니는 지고한 존재임을 알리는 소식입니다. 평화는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홀로 마음의 평화를 추구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거시적으로 생각해야합니다. 일체 중생이 죽음마저 뛰어 넘는 평화를 누리기 위해서는 일체중생이 합심을 해야 합니다. 그 합심의 구심점은 바로 꽃을 들어 보인 뜻과 자리를 나눠 앉은 뜻, 그리고 관 속에서 두 발을 내밀어 보인 뜻입니다.

집착하는 마음에서 생겨나는 탐심을 버리고 스스로 주인이 되어, 지혜로운 마음을 가지고 부처님께서 세 곳에서 전하신 그 진리의 요체를 생각하면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 이 법문은 만불신문 160호(2006년 7월 15일자)에서 옮겨왔습니다.

2012-10-12 / 5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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