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광 스님 지음 『치유하는 불교 읽기』
불교를 처음 만날 때, 우리는 사성제와 팔정도가 무엇인지 외우고, 무아와 무상과 연기의 원리를 이론으로 배운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이 가르침들을 별 생각 없이 ‘진리’로 받아들이고 넘어간다. 우리 삶과 붓다의 가르침이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를 깊이 생각하고 몸으로 익히려 애쓰는 이는 많지 않다. 이 때문에 불교 핵심 교리들이 소위 ‘죽은 지식(알음알이)’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오랫동안 불교와 심리학의 만남을 추구해온 서광 스님은 불교를 심리학 관점으로 접근하는 것이 붓다의 가르침을 우리 삶의 현장에서 살아 숨 쉬게 하는 한 방법이라고 말한다. 스님이 보기에 붓다는 우리의 마음병을 고치기 위해 가르침을 폈다. 우리가 인간관계에서 겪는 갈등을 해결하고 인생에서 마주치는 장벽을 뛰어넘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붓다가 ‘심리 처방전’을 지어줬다는 뜻이다. 많은 선지식이 팔만사천법문을 마음 심(心) 자 한 글자로 줄일 수 있다고 한 것 역시 바로 이런 뜻이라고 저자는 풀이한다.
이 책은 붓다가 편 가르침을 심리학 관점에서 새롭게 보면서, 불교의 핵심 교리가 마음 치유와 어떻게 체계적으로 연결되는지를 탐구했다. 그 결과 공부를 위한 공부, 수행을 위한 수행이 아닌 ‘마음 치유를 위한’ 불교 입문이 완성되었다.
‘치유하는 불교 읽기’란?
불교 공부는 이론과 실천이 분리되어서는 안 된다. 공부를 한 만큼 인격이 올바르게 변해야 하고, 인격이 올바르게 변한 만큼 삶이 좋아져야 한다.
‘치유하는 불교 읽기’란 우리의 인격을 올바르게 바꾸어 좀 더 행복한 심리 상태에 이르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불교를 공부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우리 마음속에 있는 세 가지 독, 즉 탐욕과 화와 무지를 불교 공부를 통해 치유하는 것이다.
따라서 치유하는 불교 읽기는 머리로 이해하거나 몸으로 수행하는 것보다는 가슴을 터치하여 감동을 유발하는 데 초점을 둔다. 감동을 유발하면 그 감동이 우리에게서 선한 심리 상태를 촉진하고 유지하도록 도우며, 이를 바탕으로 한 실천이 삶 속에서 일어난다.
이렇게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몸으로 실천하여 궁극에는 삶을 바꾸는 것이 바로 치유하는 불교 읽기의 최종 목표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불교 교리와 수행
지금까지 우리는 사성제, 팔정도, 삼독, 십이연기 등 불교 핵심 교리를 따로따로 공부했기 때문에 이 가르침들이 서로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 파악하기 어려웠다. 그만큼 교리의 진정한 뜻에 다가서는 데 장애를 겪기도 했다.
저자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파편화된 불교 교리를 ‘치유’라는 줄로 꿰어 체계적으로 설명했다. 삽십칠조도품이라는 수행 체계가 사성제의 각각에 어떻게 대응하는지, 팔정도는 왜 수행으로 보기 힘든 것인지, 왜 바라밀 수행은 보시바라밀로 수렴되는지, 왜 본격적인 수행에 앞서 건강하지 않은 마음을 우선 다스려야 하는지 등을 꼬리에 꼬리를 무는 방식으로 풀이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 불교 교리들이 어떻게 서로 이어져 있는지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다.
또 우리 삶의 모습들을 교리 설명의 바탕으로 삼고 있는 저자의 설명 방식 덕분에,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붓다의 가르침이 삶과 어떤 식으로 닿아 있는지도 알 수 있다. 내 삶, 우리의 삶을 통해 이해하는 불교이기에 그만큼 더 쉽게 이해가 가고 생생하게 다가온다.
저자는 치유를 위해서는 불교를 구체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음도 역설한다. 예를 들어 『금강경』의 한 구절인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의 일반적 풀이인 ‘머무르는 바 없이 마음을 낸다’는 어렵고 추상적이어서 마음 치유에 적용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하지만 이를 ‘터치 앤 고(Touch and Go)’ 기법으로 이해하면 마음 치유에 곧바로 적용할 수 있다. 다섯 가지 감각 기관이 각각의 감각 대상과 접촉하는 순간에 발생하는 감각과 감정 및 그 감각과 감정에 개입하는 자아의식의 작용을 알아차리고(터치), 접촉 순간의 경험이 고정된 실체가 아님을 인식하여 내려놓으면(고) 착각에서 오는 고통(붓다가 말한 두 번째 화살)을 맞지 않을 수 있다는 뜻으로 이해하고 수행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응무소주 이생기심’에 담겨 있는 치유 메시지이다.
우리는 하루에도 지옥과 천상을 오간다
심리학 관점에서 육도윤회를 이해하면 지옥도, 축생도, 아귀도, 인간도, 아수라도, 천상도는 우리가 경험하는 마음 상태를 여섯 가지 유형으로 나눈 것이 된다. 이렇게 보면 우리는 하루에도 지옥과 천상을 오가며 살고 있는 게 된다.
우리가 꿈꾸는 이상 세계는 대개 천상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근심과 걱정이 없는 행복하고 평화로운 세계가 바로 천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천상도의 마음 상태에서는 건강, 부, 아름다움, 명상 상태 등이 극단적으로 순수하게 유지된다. 그러한 상태를 ‘나’가 누리고 있는 것이므로 자아의식이 여전히 강하게 살아남아 있으며, 항상 쾌락 중심적이다. 그런데 영원한 것이란 없으므로 천상도와의 인연이 다하는 때가 올 것이고, 인연이 끝난 후엔 지옥도로 떨어지는 것을 피할 수 없다. 따라서 천상도의 마음 상태에 들어서는 경험은 그리 반가워할 게 못된다.
심리학 관점에서 보면 축생도와 아수라도는 통하는 면이 있다. 둘 다 목표를 향해 돌진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축생도의 마음 상태에서는 좌우를 돌아보지도 못하고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도 파악하지 못한 채 앞으로만 돌진하는 반면, 아수라도의 마음 상태에서는 자기 자신을 포함한 제반 상황까지 모두 꿰고서 치밀하게 목표를 추구하는 게 다를 뿐이다. 다시 말해 축생도와 아수라도를 나누는 기준은 어리석음과 명석함이다. 그런데 두 마음 상태 모두 따뜻한 가슴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자칫 파국을 불러올 위험을 안고 있다.
붓다는 인간으로 태어났다
저자가 가장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마음 상태는 인간도의 마음 상태다. 저자가 진행한 한 워크숍에서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는데, 인간도의 마음 상태에 있는 참가자들이 가장 많은 자격증과 학위를 지니고 있다는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이는 인간도의 마음 상태가 높은 이상을 성취하고자 노력하는 것과 관련 있기 때문이다.
인간도의 마음 상태에 있는 사람은 욕망과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고통을 겪기도 하지만, 이상을 위해 열정적으로 노력하기 때문에 진정한 해방을 위해 깨달음의 길을 갈 수 있는 가능성에도 열려 있다. 인간도는 희망을 향해 열린 세계인 것이다. 붓다가 인간의 모습으로 태어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불광출판사 / 288쪽 / 신국판 변형 / 1만 4000원
출처 : 출판사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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