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안 스님(조계종 종립 은해사승가대학원 원장)
잘 알려진 이야기입니다만 불교에서는 선과 교를 마음과 말의 관계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선은 부처님 마음이요(禪是佛心), 교는 부처님 말씀이다.(敎是佛語)”는 말은 선문어록에 자주 등장하는 말입니다.
마음속에 일어난 생각을 현하여 남에게 전달하는 것이 말 곧 언어입니다. 그런데 마음과 말이 범부들에게는 일치되지 않는 약점이 있습니다. 이른바 언행일치가 되지 않아 말이 헛소리가 되거나 거짓말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말입니다. 이리하여 말이 진실하지 않을 때는 곧 마음이 진실하지 않다고 판단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의 행위는 마음에서 말과 행동으로 일어납니다. 이것을 신·구·의 삼업이라 하지요. 마음에 일어난 생각이 의업이 되고, 말은 구업이며, 신체적 행위가 신업입니다. 이중 의업은 남에게 분명히 표시가 되지 않으므로 무표업(無表業)이라 하고, 구업과 신업은 남이 알 수 있도록 표시되는 표업(表業)이 됩니다. 때문에 인간의 표현된 행동은 반드시 그 배후에 표현되지 않은 어떤 비밀이 숨어 있는 결과가 됩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거짓말을 했다 할 때 왜 그 사람이 거짓말을 했는가 하는 의문이 남는다는 것입니다. 동시에 이 의문은 항상 그 사람에게 믿을 수가 없다는 불신을 가져오게 됩니다.
불교의 수행 가운데 선정 수행, 다시 말해 참선 공부가 왜 중요하냐 하면 선정이 닦아진 마음에서는 번뇌와 망상이 쉬어지기 때문에 마음과 말, 마음과 행위가 항상 일치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진실이 그대로 말로 이어지고 행동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남으로부터 불신을 초래하지 않게 됩니다.
말 한마디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한마디 말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내 마음에서 나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흔히 우리는 “말 한마디가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남에게 고마움을 느끼도록 하면 그 대가가 엄청나게 크다는 것을 뜻하는 말이지만 그 보다도 말이란 마음의 표시이므로 이 표시가 잘못되면 내 자신이 잘못되는 엄청난 인과의 법칙을 가지고 있는 것이므로 말은 항상 신중하고 진실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느 시대고 사회는 그 시대 사람들이 쓰는 언어의 진실성으로 사회도덕과 윤리 수준을 가늠하게 됩니다. 거짓말이 횡행하고 사기가 들끓는 사회는 언어의 생명력이 죽어 있는 사회가 됩니다. 말을 믿을 수 없을 때는 아무것도 믿을 수가 없게 됩니다.
사회에는 그 시대 사람들이 심어 놓은 언어의 나무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쓰는 말이 거짓이 되면 이 언어의 나무가 말라 시들어 고사를 하게 됩니다. 이 나무에 물을 주어 다시 생기를 얻어 살아나도록 하는 것이 그 사회의 공동 책임인 것입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정치적 환경이나 사회적 환경의 제반 사정이 말에 대한 의심을 많이 낳게 합니다. 모두가 언어문화의 천박성 때문이라 할 것입니다.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않는 것이 좋으며, 말에 대한 책임이 내 자신의 진실성을 보장하는 것입니다.
* 이 법문은 만불신문 162호(2006년 8월 12일자)에서 옮겨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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