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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파-초의 선 논쟁과 선사상을 엿보다 [문화] 글자크게글자작게

 
백파 긍선 지음 신규탁 옮김 『선문수경』
초의 의순 지음 김영욱 옮김 『선문사변만어』

백파 긍선(白坡 亘璇) 스님의 『선문수경(禪文手鏡)』과 초의 의순(草衣 意恂) 스님의 『선문사변만어(禪門四辨漫語)』가 번역됐다. ‘한국불교전서(韓國佛敎全書)’ 역주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동국대는 최근 이 두 권의 책을 펴냈다.

‘한국불교전서’는 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 말(1896)에 이르는 기간에 한국인에 의해 찬술된 불교전적을 집대성한 ‘현대판 속장(續藏)’이다. 동국대학교 불교문화연구원 한국불교전서역주사업단은 2007년부터 불교학자들과 함께 문ㆍ사ㆍ철을 망라한 연구자와 번역전문가들을 다양하게 참여시켜 증의, 교감, 주석, 해제 작업 등을 거쳐 2020년까지 ‘한국불교전서’에 수록된 불교 문헌 323편 전체를 번역해 시리즈로 매년 순차적으로 출간하고 있다. 2010년과 2011년 각 7권을 출간한데 이어, 올해도 이미 다섯 권을 출간했다.

선문(禪文) 판석(判釋)의 날카로운 통찰력을 보여준 조선 후기 으뜸 선서(禪書)

이번에 출간한 『선문수경』은 송대(宋代) 이후 공안을 염롱(拈弄)하던 선문종사(禪門宗師)들의 염(拈)ㆍ송(頌)ㆍ거(擧)ㆍ평(評)과 찬(讚)ㆍ화(話)ㆍ창(唱)ㆍ화(和) 등을 판석(判釋)한 책이다.

백파 자신 이미 그의 나이 50대에 『선문염송집사기(禪門拈頌集私記)』와 『선문오종강요사기(禪門五宗綱要私記)』를 손수 지었고, 고려의 진각 국사 혜심의 『선문염송집(禪門拈頌集)』, 구곡 각운(龜谷 覺雲)의 『선문염송설화(禪門拈頌說話)』 등 방대한 자료들을 섭렵하여 선문(禪文)을 판석한 결과물이 『선문수경』이다.

백파는 임제삼구(臨濟三句)에 제시된 의미의 행상(行相)을 좌표로 삼아 선문(禪文)을 판석하였다. 즉, 본분(本分)과 신훈(新熏), 수연(隨緣)과 불변(不變), 진공(眞空)과 묘유(妙有), 대기(大機)와 대용(大用), 가리사(家裏事)와 도중사(途中事), 죽임〔殺〕과 살려줌〔活〕, 긴 세월〔古〕과 이 순간〔今〕 등을 ‘논리’로 삼아 선문(禪文)을 비추어 보는 손거울을 만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구자무불성화간병론(狗子無佛性話揀病論)’의 과목을 나투고 해설〔科解〕하는 장에서는 ‘무(無)자 화두’ 드는 방법으로 ‘단제(單提)’, ‘전제(全提)’, ‘근제(勤提)’를 제시하고 그 장단점을 소상하게 소개한다. 그리고는 결론적으로 ‘단제’하여 일념만념 ‘이것이 무엇인가’에만 집중하여, 일체의 사량 분별을 끊고 또 끊어서, 그렇게 한다는 생각마저 지우라고 한다. 이것이 임제선의 골수(骨髓)이며 극칙(極則)이기 때문이다.

『선문수경』을 통해 우리는 조선 승려들이 선 문헌을 어떻게 바라보고 해석했는지 주요한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동국대학교출판부 / 180쪽 / A5 / 1만 2000원

선론(禪論)을 담금질한 조선 후기 사변(思辨)의 용광로

《선문사변만어》는 초의 의순이 백파 긍선의 삼종선(三種禪) 이론을 논박하고 선을 보는 바른 관점을 확립하려는 의도에서 저술한 책이다.

삼종선 논쟁의 불씨를 지핀 초의의 논박은 의리선(義理禪)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초의는 의리선과 격외선을 방법상의 분류라는 점에서는 받아들이지만 차별의 관점에서는 보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조사선과 여래선에 대해서도 법을 전하는 주체의 차이가 있을 뿐이며, 이들 두 선 사이에 차등이나 우열은 없다고 주장함으로써 조사선을 최고의 선법(禪法)으로 본 백파의 설을 비판한다.

단계적 가치로 구분 지은 백파의 삼종선 분류에 대해 초의는 철저히 평등의 관점에 기반을 두고, 각각은 근기에 따른 언어 방편으로서 무차별의 본분을 구현하고 있음을 낱낱의 전거를 들어 논파하고 있다. 선(禪)과 교(敎)는 불가분한 관계라는 이해에 입각하여 교학적 활용의 활로를 찾고자 했던 초의의 고민은 이 책의 네 가지 주제이자 핵심 논점인 조사선과 여래선, 격외선과 의리선, 살활(殺活)과 기용(機用), 진공(眞空)과 묘유(妙有)의 논변에 잘 드러나 있다.

방편의 언어를 긍정하는 방법을 통해서 자신의 선론을 분명하게 전개하고, 조선 후기 불교학계에 활력을 불어넣은 초의의 공적과는 별도로 백파의 논점을 제대로 격파했는가는 문제로 남아 있다. 흙덩이를 던진 사람을 쫓지 않고 흙덩이를 쫓아간 격인지, 죽은 뱀을 잘 가지고 놀아 살려 놓은 격인지 초의와 백파의 논지를 함께 면밀히 살펴본다면 비판의 허와 실을 짚어낼 수 있을 것이다.

동국대출판부 / 192쪽 / A5 / 1만 1000원


출처 : 출판사 서평

2012-11-01 / 3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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