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미래가 교육에 있음을 간파한 선구자적 탁견 지닌 스승”
동국대 불교학술원 종학연구소 공동주최로 ‘다시 보는 만암 대종사-만암 대종사 생애와 사상’ 학술세미나가 10월 28일 오후 총무원 국제회의장에서 열렸다.
이날 세미나는 중앙승가대 교수 미산스님의 사회로 △김상영 중앙승가대 불교학과 교수(만암 종헌의 생애와 사문상) △김용태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연구교수(백양사 강학의 계승과 만암의 전통 인식) △김광식 동국대 연구교수(만암의 선농일치 사상) △한동민 수원박물관 학예팀장(근대 불교계와 만암 송종헌의 교육활동) △조계종 원로의원 암도 스님(내가 들은 만암스님)이 주제발표를 했다.
논평자로는 미황사 주지 금강스님, 이종수 동국대 연구초빙교수, 이치란 조계종 국제교류위원, 황인규 동국대 역사교육과 교수가 참여했다.
또 원로의원 도문·인환스님(동국대 불교학술원장), 포교원장 혜총 스님 등을 사부대중 200여명과 전 봉은사 주지 명진 스님도 참석했다.
백양사 주지 시몽 스님은 대회사에서 “1974년 만암 대종사께서 고불총림의 깃발을 내건 것은 일제 식민지 불교 체계화에서 발생한 불교계의 모순을 극복하려는 성격을 갖고 있다”면서 “특히 해방 이후 종단 안팎에서 정화운동의 바람이 불고 있을 때 만암 대종사께서는 종단 내부에서 자주적인 불교정화를 모색하되 현실을 직시하면서 정화를 펼쳐나가고자 했다”며 고불총림 깃발을 꽂은 만암 대종사를 평가했다.
조계종 원로의원인 암도 스님은 1900년대 광성의숙을 설립해 신교육을 단행하고, 1930년대 중앙불교전문학교 초대 학장 역임, 해방 후 정광중고등학교 설립 등 시대의 선각자로 만암 스님을 기억하며 가람수호와 종정 추대과정을 소개하고, “앞으로 백양사와 만암문도 차원에서 스님의 흔적을 찾고 정리해 만암스님의 바른 역사를 만들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상영 중앙승가대 교수는 ‘만암 종헌의 생애와 사문상’을 발표하면서 만암스님을 △종사관(宗史觀)이 뚜렷한 사문 △교육분야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사문 △가람수호의 화신 같은 사문 △생산불교 반선반농(半禪半農) 불교 실천한 사문 △평등과 원융화합의 가르침을 실천한 사문으로 평가했다.
김용태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연구교수는 ‘백양사 강학의 계승과 만암의 전통 인식’을 통해 만암 스님의 불교정화 내용과 환부역조 등을 고찰했다. 김 교수는 만암 스님이 1956년 쓴 글을 분석해 “태고 보조의 환부역조는 단순한 종조론이나 전통인식의 차원이 아닌 정화과정에서 일어난 종단 주도권 및 이권쟁투 정치권력의 개입과 명분 및 상징성 회득과 맞물린 치열한 현실 문제였다”고 분석했다.
이어 “만암 스님은 수행승(비구)은 수행과 함께 종단과 주요사찰의 운영을 맡고 교화승(대처)은 사업운영 및 포교를 담당해 승단화합과 상부상조를 이룰 것을 촉구했다”면서 “이는 만암의 지론이었던 정법승과 호법승의 공존을 거듭 표명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총무원장 자승 스님은 포교원장 혜총 스님이 대독한 치사를 통해 “만암스님은 근현대 한국불교사를 관통하는 대종장”이라며 “만암 대종사는 반선반농을 온몸으로 실천하시며 승가의 자극자족에 심혈을 기울였으며, 1928년 동국대학교 전신인 중앙불교전문학교 초대 교장직을 수행하고, 1947년 광주 정광중학교를 설립하시는 등 한국불교의 희망과 미래가 교육에 있음을 간파하신 선구자적인 탁견을 지니셨던 이 시대의 스승”이라고 평가했다.
동국대 불교학술원장 인환 스님은 “만암스님은 한국 불교 최초로 ‘고불회’를 조직했던 인물”이라며 “해방 이후 사찰에서 소외되었던 수행승에게 일부 사찰의 운영을 맡기자고 제의해 이를 계기로 ‘불교정화’의 기치를 높이게 됐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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